유튜브 조의영역TV 화면 캡처(기사내용과 무관)

[비즈경영] 장재성 기자

어렸을 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야기 해주시던 옛날 이야기에는 늘 ‘호랑이’가 등장했다. 호랑이는 과거 경상도 지방에서 주로 불리던 어원이었다.

‘호랑’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으로써, ‘범과 이리’를 통칭하는 의미를 가진다. 또 북부지방에서는 그대로 호랑이를 ‘범’으로 불렀는데 이 역시 호랑이, 표범 따위를 모두 아우르는 뜻으로 사용됐다. 중요한 것은 ‘호랑이’라는 명칭으로 불린 시기는 18세기 이전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쨌든 이처럼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호랑이에 대한 설화와 목격담을 들으며 자라왔다. 한반도는 예로부터 산지가 국토의 70%를 차지하고 천해의 자연을 이루고 있어, 호랑이의 서식지로써 손색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국토 면적에 비해 많은 호랑이 개체수가 유지되면서, 뜻하지 않게 사람과의 마찰을 빚기도 했다. 실제 호랑이에게 화를 당해 죽는 경우를 ‘호환'(虎患)이라고 불렀는데, 강원도 지방에서는 이런 호환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영혼이 호랑이의 명령을 따라 사람을 유인해 죽인다는 미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호식총'(虎食塚) 이라는 돌무덤을 만들어 이들의 영혼을 가두는 의식을 실시했다. 실제 지금도 이 지역에는 호식총과 관련된 유적을 발견하기 쉽다.

이처럼 인간과 호랑이가 오랜 기간 공존해온 한반도에서 언제부터인가 호랑이가 자취를 감춰 버렸다. 호랑이 뿐만 아니라 ‘범’의 범주에 포함됐던 표범, 늑대, 이리, 승냥이 등이 한반도 야생 먹이사슬에서 아예 사라져 버렸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의 ‘해수구제사업’이 큰 이유로 작용한다. 이 전부터 조선은 해수에 의한 인명과 농작물 피해를 우려해 ‘착호갑사’등의 조직을 꾸려 호랑이와 각종 맹수 사냥을 주도했지만, 일제의 무지막지한 사냥과 수렵으로 인해 호랑이를 비롯한 대다수 야생동물의 ‘씨’가 말랐다.

결국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사살된 시베리아(아무르) 호랑이가 남한의 마지막 호랑이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후에도 전국 주요 지역 곳곳에서 호랑이에 대한 목격담이 끊이지 않았고 주로 지리산 자락이나 산림이 우거진 지역에서 소문은 더욱 구체적으로 나왔다.

목격담 외에도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호랑이 복원 사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과 각종 매스미디어에서 호랑이 목격담을 바탕으로, 한반도 호랑이를 찾아 나섰지만 대부분 큰 성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 1인 크리에이티브 채널 및 다중플랫폼의 발달이 된 시기까지 한국 호랑이에 대한 구체적인 목격담이나 발견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단순한 야생 포식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의 혼을 담은 신령한 동물로 생각했고 각종 설화나 신화 속에도 자주 등장하며 친근한 이미지마저 풍긴다. 비록 인간과의 공존이 실패하고 호환 등을 통해 ‘무서운’ 모습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호랑이는 역사적으로나 생태계적으로 상당한 가치를 지닌 상징이라는 점이다.

아직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한반도의 깊숙한 산자락 그 어딘가에 한국호랑이의 발자취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